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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이백면 고분군 전라북도 기념물 제47호,주변에 풀배기 2017-05-30
본래 南原시 이백면 초촌리는 남원군(南原郡) 백암면(白岩面) 오촌리(五村里) 지역으로 오곡(鰲谷), 자래울 또는 오촌(五村)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백암면(白岩面)의 오촌리(五村里) 일부가 초동과 오촌의 이름을 따서 초촌리(草村里)라 하고 초촌리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관할 초리(혹은 터서리)라는 마을이 무동산(舞童山) 동쪽을 중심으로 있었으나, 서기 660년 신라의 삼국통일로 백제가 멸망하자 이곳에 살던 주민(백제민)들은 망국의 한을 달래며 유민으로 뿔뿔이 흩어져 옛마을은 없어지고 현재는 농경지(서당들 또는 터서리들)로 변했다고 한다. 무동산 주변에는 백제의 고분이 산재하고 있어 1979년 문화재발굴 조사단에 의해 조사 발굴되어 현재 초촌 고분군으로 명칭하여 지방기념물 47호로 보존, 보호하고 있다.
이 고분군의 위치는 남원시 동쪽 약5km지점 이백면 초촌리의 일명 '자라올' 즉 오촌(五村)마을 동쪽 야산지대와 그 서쪽 무동산 남쪽 산등선과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밀집되어 있다. 1978년 발굴 조사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것으로 확인된 고분만도 총211기에 이르렀으나 거의가 무참히 파괴되었다. 봉토는 없으며 약10도의 경사를 이룬 곳에 지표면에서 50∼80cm 내외의 땅속에 고분 개석상면이 확인되었다. 석실(石室)은 서남쪽을 향해 마련되었고, 현실과 연도가 완연하다. 봉토는 없으나 지표에서 50∼80㎝ 내외의 땅속으로 들어가면 무덤의 뚜껑돌(개석상면)이 확인된다. 돌방(석실)은 서남쪽으로 향해있으며, 널방(玄室 : 시체가 담긴 칸) 과 (연도 : 석실내의 통로)가 완연하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74m, 북쪽 머리부분 폭은 1.26m의 장방형으로서 5매의 뚜껑 돌판자를 맞추어 얹었고, 바닥에는 너비 10㎝ 안팎의 편편하고 깨끗한 하천돌을 깔았는데, 바닥 윗편에서 천정 까지의 석실 높이는 95.5㎝이다.북쪽 벽은 높이 30㎝ 안팎의 모난 돌을 초석으로 깔고, 그 위는 불규칙한 길고 큰돌을 4단으로 쌓아 공간을 메우기 위해 잡석으로 채웠다. 벽면 약 60㎝ 높이까지는 수직으로 쌓다가 그 위는 안으로 오목하게 굽으면서 점차 축소시켰다. 가장자리 벽은 기반을 길고 불규칙적인 돌을 길게 쪼게 4단으로 쌓았는데, 단을 쌓을 때마다 생긴 틈새를 잡석으로 채우면서 위로 올라 갈수록 활 모양으로 경사를 만들었다. 천정 뚜껑은 5매가 모두 일정한 규격이 아니고, 천정 높이도 일정하지 않으며, 사이사이를 잡석으로 채웠다. 복도 동쪽 벽은 현실 동벽을 그대로 연장시켰고, 서쪽 벽은 현실 남단에 좁히고 있어, 복도 폭은 현실 쪽이 89㎝, 입구 쪽이 92㎝이며, 복도 바닥은 편편하고 깨끗한 냇가의 돌을 깔았는데, 현실 바닥보다 약 10㎝ 높게 깔았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74m, 북쪽 벽은 높이 30cm 안팎의 모난 돌을 초석으로 깔고, 그 위는 불규칙한 길고 큰돌을 4단으로 쌓아 공간을 메우기 위해 잡석으로 채웠다. 벽면 약 60cm 높이까지는 수직으로 쌓다가 그 위는 안으로 오목하게 굽으면서 점차 축소시켰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역인지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석실이 보존된 27개의 고분이 남아있다. 현재 오촌 마을은 1637년 병자호란시 연안 이씨(延安李氏)가 피난차 삼남의 요지인 남원에 당도하여 정착지를 물색하다가, 요천을 건너 장백산 자락에 위치한 지금의 마을에 도달해보니 이곳의 지리적 위치가 천혜의 요충지여서 정착지로 삼았는데, 그후 진주 소씨와 남원 양씨가 합세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본래 이 마을은 자래울 또는 오촌(鰲村)이라 했다. 연안 이씨가 살다가 마을 앞 당산에 부친의 묘를 쓰려고 땅을 파자 바위가 나와 그 바위를 깨트리자 그속에서 자라 한 마리가 기어 나오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묘를 다른 자리로 옮기고 그곳에 우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자라가 나와 자라울, 자래울, 오촌(鰲村)으로 불렀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자라 오(鰲)를 다섯 오(五)로 바뀌어 오촌(五村)이라 했다.
주변은 산으로 둘려싸여 남쪽을 바라보면서 앞쪽은 산을 게간하여 밭을 일구고 있다,
2017년 5월 27일 토요일날 풀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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