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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동체부산시민모임 기본교육일정 | 지킴이행사 2015-04-06  | 조회수 1429
허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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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6차 (2013.09.28) 지킴이 모고헌과 양수선생 (영천의 누정) | 지킴이행사 2014-06-22  | 조회수 1732
이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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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나주 경현서원에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만나다;의 활동 | 지킴이행사 2014-01-26  | 조회수 2452
송병관

나주 경현서원에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만나다.

 

경현서원, 옥천서원, 봉양사 문화재지킴이 송병관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의 향교를 거친 학동들이 과거를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전문대학 이상 수준의 학생들이 출입하던 조선시대 학교다. 순천에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0~1504)선생을 배향하던 옥천서원(玉川書院)을 주제로 문화재청 주관 문화재지킴이를 한 지도 2005년부터였으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고장에서 보면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0년 평안도 희천에서 전라도 순천으로 귀양살이 배소(配所)가 바뀌었으니 510여년이 다 지난 지금이다. 순천으로 귀양해 와 4년여 동안 전라도 지식인들과의 인연을 맺었으니 어찌 그 인연의 계속됨을 생각하지 않으리. 이어 생각하면 이곳 나주(羅州)의 경현서원(景賢書院) 역시 나주 목사(牧使)로 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 선생과 인연을 맺어 돌아가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정신을 잇고 하였으니 한훤당 선생의 학덕은 소학(小學)이라는 책자를 통해 실천하고 궁행하였던 분이라 시대를 뛰어넘어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서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기에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어떻게 생각해보면 흘러 가는 물에 두 번 다시 그 물에 발을 담글 수는 없다. 하지만 500여년 장강(長江)의 물이 흘러왔음을 어찌 부인할 수가 있겠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김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했지만 그 창조적 발상은 모양과 형세를 달리하여 변화무쌍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 다른 선진국을 예로 들지 않아도 이웃 나라의 중국에서 공자의 사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 중국이라는 땅에 풍미(風靡)하고 있음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청에서의 또한 애써 전통의 좋은 점을 살려내고 그 정신적 맥을 잇고자 하는 아이디어 가득한 노력들이 눈에 보여지는 문화재를 통해 찾아가고 알아가는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이니 저 또한 한훤당 선생의 소학정신으로 그 한 자투리를 붙잡고 동아줄 같은 우리나라의 정신적 맥을 이어내고자 함이 아니던가!

필자는 옥천서원이 있는 순천에서 나주로 이사를 옴에 따라 옥천서원은 순천지역의 문화재해설사분들에게 전수하고, 나주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한 경현서원을 알고 있었던 터라 이 곳에 와 소학에 기초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소개하고 이 분에 대해 우리 고장과의 관계며 특히 교육현장에서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접근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구체적인 노력의 소산으로는 호남원예고등학교에서는 나주시를 본향으로 두고 탯줄을 묻었던 선생님 한 분과 미술에 조예 깊은 일반인 한 분, 우리 역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 한 분과 함께 한훤당 김굉필 교육사상 연구회를 조직하여 학생 모집을 하였던 결과 선생님 4명, 그리고  학생 15명으로 구성하여 20134월부터 교육활동을 전개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유럽이며 동남아며 미국이며 호주며 세계 여러 나라 18개국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 다른 나라들을 다녀 본 그간의 문화적 경험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가장 지방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고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지방적인 것이다.’라는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하여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통한 그 정신 소산을 발전적 방향으로 모색하는 방향에서 교육의 의미를 찾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인물됨에 대해서는 역사적 위치를 살펴보는 시간과 그 분의 교육사상과 교육적 실천을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이러한 시간은 단지 전수적인 것이 아닌 오늘의 나로서 어떤 위치됨을 가져야 할 것인가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호가 한훤당이듯이 각자 자기의 호를 짓는 활동 시간과 그 분의 일화적인 삶 가운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훤당 선생의 일화적인 삶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지금의 나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한훤당 선생의 시문이 있는 선생의 친필 글씨를 통해 학교에 있는 비석문의 탁본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한훤당 선생이 상소문을 썼듯이 우리 수준에서 학교 내지는 나주시, 아니 전라남도 교육청, 교육부에 보내는 상소문과 유사하게 건의문을 쓰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한훤당 선생의 일화적 이야기를 단지 글씨만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한훤당 선생의 제자인 반우형(潘佑亨-1459?? 반기문 현재 UN 유엔사무총장의 선조 되는 분)에게 남긴 한빙계(寒氷戒-1496)’라는 교육적 덕목을 통해 인성교육차원에서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장차 여러분은 자신의 제자에게 어떤 말과 글로 남기겠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경현서원과 한훤당 김굉필 선생에 대한 골든 벨문제로 출제하여 3명의 수상자들에게는 아이돌그룹의 CD를 부상으로 주기도 하였다. 더욱은 이곳 나주의 유교문화 정수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조선대학교 이종범교수를 초빙하여 나주 향교에서 강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우리 지역문화재인 경현서원(景賢書院)을 통해서는 이 서원이 1977년에 나주시 경현동에서 나주시 노안면으로 자리를 옮겨온 터라 나주시 경현동에 있는 금성산 산자락의 경현서원 옛터 자리를 탐방하는 시간과 일부러 관내 시내버스를 타고 늘로 경현서원을 소개하고 다니자는 의미로 직접 방문하여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관련 있는 소학을 한훤당 김굉필 교육사상연구회에서 간략하게 제작한 소학득강(小學得講)이라는 책자로 강독(講讀)하는 시간도 4차례 가졌다. 그리고 또한 단지 글을 읽고 강독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경현서원 주위를 풀을 뽑고 청소하는 노작시간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봉사활동 시간을 가져서 나주시로부터 봉사활동 시간을 인증받기도 하였다. 미술치료 전문가와 함께 미술치료 차원에서 경현서원과 옥천서원 앞에 있는 은행나무며 정자나무를 본받아 신문을 말아 만드는 한훤당 김굉필 나무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초상화를 함께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들어 한훤당 김굉필교육사상연구회에 적극 참여한 12명의 학생들과 함께 한훤당 선생이 소학에 기초하여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요 불감훼상(不敢毁傷)은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말을 실천하였던 곳으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였던 순천 옥천서원을 방문하여 한훤당 김굉필 교육사상을 서원을 통해 참례의식(參禮儀式)과 함께 선현의 정신적 깨우침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안다고 해서 다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고 가르친다고 해서 다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조상의 정신적 얼이 산재해 있는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본다고 해서 다 알아지는 것이 아니겠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自矜心)의 출발은 보고 알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노력이, 소쇄응대(掃灑應對)라는 가장 기본적인 경현서원의 마루를 쓸고 닦고 마당에 난 풀 한포기 뽑는데서 출발하여, 더 나아가 소학득강을 큰 소리로 읽고 이를 실천하였던 2013년의 활동을 밑바탕으로 우일신(又日新)의 마음으로 2014년 새해 벽두(劈頭) 힘차게 경현서원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삼가 선생의 덕을 기리고자 활동하였던 작은 족적으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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